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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활/풍경

북서울 꿈의숲 홀로 출사

by KODOS 2009. 11. 16.

예전 드림랜드가 있던 자리에 넓고 시원스러운 공원이 새로 개장했다. 바로 '북서울 꿈의숲'(http://dreamforest.seoul.go.kr)이다. 개인적으로 어중간한 놀이공원 보다는 시민을 위한 휴식과 녹지 공간으로 조성한 점이 마음에 든다. 특히 서울은 거의 아파트 위주로 오밀조밀하게 제대로된 공원이나 녹지도 없이 개발되어 있어 운동이나 산책 시 집 근처에 마땅히 갈 때가 없는데 앞으로도 이런 공간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공원 내에는 호수, 전망대, 레스토랑, 운동시설, 문화센터, 미술전시관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전부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했다. 다음에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다음은 북서울 꿈의숲 홈페이지에서 발췌해온 공원의 유래에 관한 자료이다.


오동공원은 오패산(123m)과 벽오산(135m)이라는 두 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오패산은 일명 벽오산으로도 불리며 예부터 오얏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집집마다 울타리로 삼을 정도였다고 전해지며, 벽오산은 이 곳에 오현(梧峴)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시대 철종임금의 비 철인왕후가 손자 김석진에게 '벽오산(碧梧山)'이란 글씨를 하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오동공원이 위치한 강북구 번동은 18세기 중엽 정선이 그린 "도성대지도"와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 벌리(罰里)로 표시되어 왔으며 갑오개혁때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번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때 벌리(罰里)가 번리(樊里)로 바뀐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문화재지표 조사보고서,한강문화재 연구원, 2008)

번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씌여진 "윤관비기"라는 책에 "李氏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기설이 있었는데, 고려 말기의 왕과 중신들이 이 설에 의거 경계를 하던 중,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李氏 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는데 이로부터 이곳을 벌리(伐里)라 칭하다가 번리(樊里)가 되었다고 합니다.(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 한강문화재연구원, 2008)


아래 그림은 홈페이지에서 캡쳐해온 북서울 꿈의숲의 전체 모습이다.



이제 부터 주간에 찍은 북서울 꿈의숲 사진들이다. 야경으로 찍은 사진은 다른 카테고리에 별도로 올렸다.

북서울 꿈의숲 입구에서


창녕위궁재사

사진 찍으러 들어가면서 안내문을 찍는 걸 깜빡해서 아래에 창녕위궁재사에 관한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발췌해왔다.


북서울꿈의숲이 조성되는 옛 드림랜드 부지안에는 등록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창녕위궁재사" 라는 고택(古宅)이 있습니다.

이 문화재는 조선 순조의 2녀 복온공주와 부마 김병주의 재사(齋舍)로 높은 장대석 기단으로 감싸고 있는 전통건축양식의 목조가옥입니다. 우측의 사랑채는 무인가문 출신으로 인조반정을 처음부터 주도하고 인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훈현도감ㆍ호위청 등을 장악했던 신경진의 별장이 있습니다. 사랑채는 원형대로 보존되었고 좌측 재사는 1800년대 지어진 건물입니다. 정면 안채는 한국전쟁때 파괴되어 재건축된 건물입니다.

창녕위궁재사는 김병주의 손자 김석진이 순국 자결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김석진(1843~1910년)은 항일 우국지사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1월23일 오적신을 처형할 것을 상소하였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후에 일제가 조선의 전직 고위관료들에게 작위나 은사금을 주어 회유하려하자 이를 치욕으로 여겨 그해 9월8일 자결하였습니다.(참고:서울학연구소,1997,강북구의 역사와 문화유적)


월영지의 분수


월영지의 전체 모습


전망대


월영지에 있는 아담한 정자


전망대 너머 노을 지는 하늘


월영지에 비친 하늘과 구름


월영지의 분수


월영지의 월광폭포와 소나무 그리고 노을에 물든 구름


월영지에 비친 하늘의 구름


대칭


글래스파빌리온


간판 그대로...


날이 저무는 월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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